건설기계조종사면허 없이 건설기계를 조종하다가 사고가 발생한 경우라도 업무상 재해로 인정해야 한다는 판결이 나왔다. 무면허상태를 범죄행위로 단정할 수 없고, 직접적 사고원인도 아니라는 이유에서다. 이는 서울행정법원이 지난 8월 27일 판결한 내용으로, 피고가 원고에게 한 요양불승인처분은 취소됐다.
사고를 살펴보면 원고는 지난해 5월 27일 주식회사 B의 강원 영월군 소재 광산 내에서 굴착기를 이용해 원석정리 등 작업을 하던 중 매몰되는 사고를 당했다. 원고는 이후 ‘좌측 대퇴골 간부 개방성 골절, 좌측 하지 비골두 골절, 기타 골반의 골절, 폐쇄성’을 진단받고, 피고에게 동년 6월 21일 산업재해보상보험법에 따른 최초요양급여를 신청했다.
하지만 피고는 동년 7월 18일 원고가 신청한 최초요양 건을 불승인 처분했다. 원고가 건설기계관리법에서 정한 자격면허 없이 건설기계를 조종하다가 사고가 발생했고, 무면허 운행은 범죄행위에 해당하므로 사고는 업무상 재해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이유였다.
이에 대해 원고측은 “무면허 상태에서 굴착기를 운전한 것이 이 사건 사고의 직접적 원인이라고 할 수 없고, 굴착기를 운행해 작업하는 경우 현장상황과 작업대상 등에 따라 안전사고가 발생할 가능성은 통상적으로 수반되는 위험의 범위 내에 있다고 볼 수 있다”며 “이 사건 사고는 산업재해보상보험법 제37조 제2항 본문에서 정한 업무상 재해의 배제사유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법원은 “산재보험법 제37조 제2항 본문에서 규정하고 있는 ‘근로자의 범죄행위가 원인이 돼 발생한 부상’은 근로자의 ‘범죄행위’가 그 부상의 직접원인이 되는 경우를 의미하는 것”이라며 “근로자가 업무수행을 위해 운전하던 중 발생한 교통사고로 인해 사망한 경우 해당사고가 근로자의 업무수행을 위한 운전과정에서 통상 수반되는 위험 내에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면, 그 사고가 신호위반 등으로 일어났다는 사정만으로 업무상 재해가 아니라고 섣불리 단정해서는 안 된다”는 대법원 판례를 근거로 제시했다. 사고의 발생경위와 양상, 운전자의 운전능력 등과 같은 사고발생 당시 정황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판단해야 한다는 것이다.
피고는 당초 해당 사고에서 원고의 무면허 운전이 ‘근로자의 범죄행위’라는 주장을 제기했다. 산재보험법상 ‘근로자의 범죄행위’가 업무상 재해인정의 예외라는 점을 감안하면 이번 사고 역시 요양급여지급의 예외사유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법원은 “단순히 범죄행위에 해당하는지 여부에 따라 업무상 재해를 판단할 것이 아니라 해당사고 및 부상이 근로자의 업무수행 과정에서 통상 수반되는 위험의 범위 내에 있는지를 실질적 기준으로 삼아 개별적 사안에 따라 업무상 재해 여부를 판단해야 한다”며 “원고가 건설기계조종사면허 없이 굴착기를 운전했다는 사정만으로 원고의 무면허운전 행위가 산재보험법 제37조 제2항 본문에서 정한 ‘범죄행위’에 해당한다고 단정할 수 없다”고 판시했다.
산재보험법 제37조 제2항이 ‘근로자의 범죄행위 또는 그것이 원인이 돼 발생한 부상’을 업무상재해에서 배제하려는 취지는 범죄행위로 인한 보험사고 그 자체의 위법성 때문에 징벌적·보험정책적 의미에서 보험급여를 행하지 않겠다는 것뿐 아니라 우연성의 결여로 보험사고성이 상실되기 때문에 산재보험제도의 본질에 비춰 보험급여를 하지 않겠다는 취지로 해석되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법원은 “폭파작업 후 갱내에서 매몰사고가 발생할 위험성은 건설기계조종사면허 보유 여부와는 별개로 작업내용 자체에 내재돼 있고, 주식회사 B는 원고의 굴착기 조종면허가 취소된 사실을 알면서도 과거부터 상당기간 원고에게 굴착기를 운전해 작업을 하게 한 것으로 보이는 등 원고의 운전미숙이나 조작미숙으로 인해 사고가 발생했다고 인정할만한 자료는 없다”며 피고측 최초요양 불승인 처분을 취소했다.
안선용 기자
2025년 370호
